🪷 불교 야화제 23야
법복을 벗어던진 판사, 엿목판을 메다
일제강점기 조선인 판사였던 이찬주는 사형 선고의 죄책감에 법복을 벗고 엿장수가 되어 떠돌다 금강산 신계사에서 출가했습니다. 훗날 조계종 종정이 된 효봉 스님의 극적인 삶과 참회의 기록을 전합니다.
일제강점기, 법정에 차가운 침묵이 흘렀습니다. 한 조선인 판사가 피고인에게 사형을 선고했습니다.
판사의 이름은 이찬주였습니다. 그는 집으로 돌아와 며칠 동안 밤을 지새웠습니다. "내가 무슨 자격으로 사람이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가." 죄책감이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습니다.
다음 날 아침, 그는 법복을 벗어 던졌습니다. 보장된 부귀와 출세도 미련 없이 버렸습니다. 가족에게도 한마디 남기지 않은 채 집을 나섰습니다.
그는 어깨에 엿목판을 올려멨습니다. 신분을 숨긴 채 전국을 정처 없이 떠돌았습니다. 엿을 팔며 민초들의 고단한 삶을 바라보았습니다.
엿가위 소리에 참회의 눈물을 실어 보냈습니다. 판결문의 무게를 발걸음마다 깊이 되새겼습니다. 남의 죄를 벌하던 손으로 달콤한 엿을 나누었습니다.
어느 날, 그는 금강산 신계사로 들어갔습니다. 서른여덟의 나이에 머리를 깎고 출가했습니다. 그가 바로 훗날 조계종 종정이 된 효봉 스님입니다.
스님은 토굴에 들어가 좌선을 이어갔습니다. 엉덩이 살이 진무르도록 끊임없이 정진했습니다. 세상의 판사에서 참회하는 수행자로 태어났습니다.
되새김. 남을 향한 정죄의 칼날은 자신을 베기 마련입니다. 타인을 심판하느라 정작 내 안을 보지 못하고 있진 않습니까. 오늘 밤, 손에 틀어쥐었던 판단의 잣대를 가만히 내려놓아 봅니다.